기적의 염증 치료제, 혹은 부작용이 심한 무서운 약물. 스테로이드제를 대하는 태도는 이처럼 그 명암이 극명하게 갈린다. 잘 쓰면 약, 잘못 쓰면 독이 되는 스테로이드에 대한 오해와 함정.
"먹고 바르면 무조건 낫는다는 만병통치약을 파는 유명한 약국이 있었는데, 그 약이 모두 스테로이드 제제였죠. 약국은 떼돈을 벌었지만 많은 이들이 스테로이드 부작용에 시달렸습니다. 의약분업이 되기 전 약국에서 자체적으로 약을 만들어 팔 수 있던 시절 일이지만, 그 사건으로 '스테로이드제가 몸을 망치는구나'가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됐죠." 로즈클리닉 배지영 원장이 설명했다. "스테로이드 제제는 훌륭한 염증 치료제입니다. 금방 염증이 사그라들죠. 반면 면역력도 떨어뜨립니다. 다시 말해 세균이나 곰팡이,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해지죠. 예를 들면 여자들은 질염이 잘 생기고 남자들은 무좀이 심해지기도 하죠."
모델로 피부과 서구일 원장도 맞장구를 쳤다. "국소적으로 사용하는 연고, 주사는 그나마 괜찮은데, 근육주사, 알약으로 처방되는 스테로이드제는 더 주의를 요합니다. 전신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이런 고강도의 전신 스테로이드를 장복하면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은 당연히 높아진다. 그 중 가장 유명한 부작용이 쿠싱 증후군. 팔다리는 가늘고 얼굴이나 몸통은 살이 찌는 중심성 비만형이 돼 얼굴이 보름달 모양으로 둥글어지고 피부가 얇아지며 멍이 잘 들고 근육에 힘이 없어지는 증상이다. 이 밖에도 당뇨, 골다공증, 다모증, 혈관확장, 성장장애 등도 생길 수 있다. 그렇다고 갑자기 줄이면 더 힘들다. 스테로이드제는 면역력과 에너지를 조절하는 호르몬과 비슷해서 외부에서 너무 많이 들어오면 내부(부신피질)에서 만들어지는 양이 줄거나 생성되지 않기 때문. 이런 상태에서 약을 급격히 줄이면 힘도 없고 면역력이 떨어지며 온몸이 아프다(뼈와 근육이 얇아지기 때문).
그렇다고 스테로이드제 사용에 지나친 두려움을 느끼는 스테로이드 포비아도 문제다. 배지영 원장은 염증이 심할 때는 단기 치료로 우선 급한 불을 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의사와 환자 모두 스테로이드제 사용에 신중해야 하는 건 맞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르는 부위, 병변 정도에 따라 신중하게 어느 정도 강도의 어떤 스테로이드제를 처방할지 결정해야 하죠. 같은 환자라도 얼굴과 팔 등에 각기 다른 약을 처방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스테로이드 처방이 꼭 필요한 경우가 있습니다. 옻이 올랐거나 접촉성 피부염, 두드러기, 약 발진 등이 일어났을 때는 사용해야 하죠. 이럴 때조차 처방을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더 큰 불행이 시작됩니다. 병이 만성화되거나 코끼리 피부처럼 될수도 있거든요." 몇 년 전 호주 시드니에서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던 한 아이의 부모이자 대체 의학 전문의가 스테로이드 처방을 거부하고 대체요법으로 치료하다 아토피 2차 감염으로 아이가 사망, 아동 학대 판정을 받은 비극적인 사건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스테로이드제 사용에 신중을 기하면서도 은연중에 강력한 스테로이드제에 노출되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대박이 난 홈쇼핑 화장품, 한의원 아토피 크림, 유명하다는 에스테틱의 피부 크림 등이 스테로이드제를 함유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고, 의약분업 예외 지역의 약국 중 불법적으로 스테로이드제를 판매하는 약국이 조사 대상의 42%에 달하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더 황당한 것은 복합 제제(대표적으로 쎄레스톤지) 중 스테로이드가 들어간 약품이 있는데, 여기에 말도 안 되게 강도 높은 스테로이드가 들어가 있다는 것. "처방전 없이 살 수 있고 금방 염증이 사그라들기 때문에 피부병이 생겼다 하면 자주 애용합니다. 그럼 가렵고 붉은 기는 줄더라도 균은 점점 많아지게 돼, 결국 병변이 더 심각해지면서 부작용도 생길 수 있죠. 또 아이의경우 피부가 워낙 얇아서 국소적으로 사용해도 전신 반응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피부과에서 알약으로 처방해주는 제일 약한 스테로이드제도 벌벌 떨었건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강도 높은 스테로이드제를 써왔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확한 성분 표시 없는 '묻지마 만병통치약'은 우선 의심하는 것이 좋고, 일단 스테로이드제가 들어간 처방약은 의사의 지시대로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하자. 치료가 끝난 후 임의적으로 보관하며 여기저기 사용하지 말도록! 그리고 만약스테로이드제로 인한 부작용이 있었다면 약 이름을 잘 기억해뒀다가 피부과가 아니더라도 병원에 갔을 때 반드시 의사에게 말해야 한다. 스테로이드제는 흔히 감기약, 항생제에 널리 처방되기 때문이다. 약 부작용은 무섭다. 더군다나 발병 유무의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에 자신에게 알레르기와 부작용을 일으키는 약물이 무엇인지 반드시 인지하고 기억해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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